BlogHide Reblurtshansangyou in blurt • 8 hours ago인내---김 현 승--- 원수는 그 굳은 돌에 내 칼을 갈게 하지만, 인내는 이 어둠의 이슬 앞에 내 칼을 부질없이 녹슬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칼날을 칼집에 꽂아 둔다. 이 어둠의 연약한 이슬이 오는 햇빛에 눈부시어 마를 때까지...hansangyou in blurt • yesterday풀꽃---나 태 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hansangyou in blurt • 2 days ago그리움---조 지 훈--- 고운 임 먼 곳에 계시기 내 마음 애련하오나 먼 곳에나마 그리운 이 있어 내 마음 밝아라 설운 세상에 눈물 많음을 어이 자랑 삼으리 먼 훗날 그때까지 임 오실 때까지 말없이 웃으며 사오리다 부질없는 목숨 진흙에 던져 임 오시는 길녘에 피고 져라 높거신 임의 모습 뵈올 양이면 이내 시든다 설울…hansangyou in blurt • 3 days ago어떤 흐린 날---허 영 자--- 이별하는 하늘가엔 울음 머금은 울음 머금은 먹장구름 이별하는 길머리엔 길길이 자란 잡초 바람에 함부로 쓸리다hansangyou in blurt • 4 days ago못잊어---김 소 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히오리다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hansangyou in blurt • 5 days ago어머니---김 초 혜--- 한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hansangyou in blurt • 6 days ago아침 청평호---한 상 유--- 지난밤의 후유증으로 어지러운 산기운은 아직도 강가에 웅크려 있다 여태 물안개 짙게 덮고 호수는 깨지 않는다 다만 뒤척일 때마다 그녀의 체취가 일렁인다 조금은 더디 와도 좋으련만 벌써부터 햇살이 성화다hansangyou in blurt • 7 days ago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프로스트--- 이게 눈구의 숲인지 알 것 같다 그이의 집은 마을에 있어 그 사람은 모르리, 내가 여기 서서 자신의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나의 조랑말은 기이하게 여길 거야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 가까운 곳엔 농가도 없는데 일 년 중 가장 캄캄한 저녁에 길을 멈추었으니 말이 방울을 흔들어 댄다 뭔가 잘못 됐냐고…hansangyou in blurt • 8 days ago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노 천 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에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hansangyou in blurt • 9 days ago꽃의 반항---김 광 림--- 꽃은 꺾인 대로 화병에 담아 채우면 금시 향기로워 오는 목숨인데 사람은 한번 꺾어지면 그만 아닌가 지금은 한 아람씩 피어 물은 입술로 신의 이름을 핥으며 있는 시간 꽃은 열반으로도 관음보살의 발바닥에서 피는데 전쟁만 남고 억울한 것은 상기도 젊은 건가 아름다움과 동경을 잃어버린 다음의 꽃은 검은…hansangyou in blurt • 10 days ago겨울 나그네---황 금 찬--- 기름 난로의 열기는 체온보다 따뜻하다. 마주앙 한 잔 따라 놓고 나는 어느 계절의 나그넨가. 휘셔 디스카우가 슈베르트를 노래한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려고 이곳을 찾는 것이다. 노래가 끝나고 잔이 비면 다시 마주 앉는 고독 밤 9시 45분 거리도 잠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온실을 떠나면 나는…hansangyou in blurt • 11 days ago겨울 바다---김 남 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의 물이 수심…hansangyou in blurt • 12 days ago겨울 연가---이 해 인---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 네가 있는 곳에도 눈이 오는지 궁금해 창문을 열어 본다 너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쏟아지는 함박눈이다 얼어붙은 솜사탕이다 와아! 하루 종일 눈꽃 속에 묻혀가는 나의 감탄사 어찌 감당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hansangyou in blurt • 13 days ago눈 오는 밤에---김 용 호---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hansangyou in blurt • 14 days ago살아 있다는 것---류 시 화--- 뭍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가 온몸을 던져 바닥을 치듯이 그렇게 절망이 온몸으로 바닥을 친 적 있는지 그물에 걸린 새가 부리가 부러지도록 그물눈을 찢듯이 그렇게 슬픔이 온 존재의 눈금을 찢은 적은 있는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전 생애를 거는 일이다 실패해도 온몸을 내던져 실패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돌릴…hansangyou in blurt • 15 days ago동백---강 은 교---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오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hansangyou in blurt • 16 days ago어느 늦은 저녁 나는---한 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hansangyou in blurt • 17 days ago1월 1일터무니없는 일로 가슴 아픈 일로, 그렇게 한 해를 보냈지만 새해에는 희망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시길...hansangyou in blurt • 18 days ago12월의 일---문 태 준--- 무엇을 할까 북쪽에 끝에 섰으니 12월에 무엇을 할까 긴 투병기 같은 마른 덩굴을 거두어들이는 일 외에 꺾인 풀 왜소한 그늘 흩어진 빛 가는 유랑민 그러나 새로이 받아든 동그란 씨앗 대지의 자서전hansangyou in blurt • 19 days ago겨울 산에 가면---나 희 덕--- 겨울 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 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래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