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Hide Reblurtshansangyou in blurt • 20 hours ago옛이야기---김 소 월---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어스레한 등불에 밤이 오면을 외로움에 아픔에 다만 혼자서 하염없는 눈물에 저는 웁니다 제 한몸도 예전엔 눈물 모르고 조그만한 세상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지난날의 옛이야기도 아무 설움 모르고 외었읍니다 그런데 우리 님이 가신 뒤에는 아주 저를 바리고 가신 뒤에는 전날에 제게 있던…hansangyou in blurt • 2 days ago숲---최 백 규--- 비 내리는 병실에서 빛이 일렁이고 있다 우리는 서로 같이 아침을 바라본다 연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창을 연다 비를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미래를 사랑이라 믿는다hansangyou in blurt • 3 days ago전호동전---한 상 유--- 어쩌자고 오대골 개구지 둘이 나룻배를 밀고 올라타 보니, 어럽쇼 노가 없네. 그래서 뭐 두 팔이 노지. 하여 저었답니다 힘껏 그런데 말이죠 팔심깨나 쓰고 돌아보니 천릿길 맞은편을 만릿길, 냅다 팽개치고 죽을 둥 살 둥 버둥댔다나, 쯧쯧 배는 어찌됐냐면... 그건 모른다며 소주 한잔 삼키고 쥔…hansangyou in blurt • 4 days ago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병 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hansangyou in blurt • 5 days ago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박 소 란--- 검정 비닐봉지 하나 담장 너머로 펄렁 날아갈 때 텅 빈 마음이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로 자꾸만 저기로 향하려 할 때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아 이리 온, 한번쯤 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 뜻 모를 젖은 손이 가슴을 두드리는 새벽 슬픔을 입에 문 젖내기처럼 골목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주지 않을래? 집집마다의 비극을…hansangyou in blurt • 6 days ago조용한 일---김 사 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hansangyou in blurt • 7 days ago나뭇잎 선물---김 복 희--- 비, 나뭇잎 흔들리는 것과 비, 나뭇잎 흔들리는 것은 다르다 어느 날 어느 바람 어느 비도 없는 긴 날 흔들리는 나뭇잎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흔들릴 것이다 생각에 빠져 걸음을 멈출 것이다 짐처럼 나를 전부 내려놓고 잠시 나의 정수리보다 위를 나의 발바닥보다 아래를 가늠하면서 겨누어 보면서 사람들 보라고…hansangyou in blurt • 8 days ago사람---윤 중 목--- 사람들,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하루의 수고가 가파를수록 눈길 부디 나직한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문득 해 떨어져 골목골목 담벼락 외등 켜질 때면 그네들 얼굴도 하나둘씩 켜진다 밥 냄새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그네들 말소리 귀를 두드린다 사람들 그리움이 갈근갈근 마른 목젖에 걸리운 저녁이면 천생 나도 사람인가 보다…hansangyou in blurt • 9 days ago느티나무---한 상 유--- 푸름 아우르자 허리춤 끄르고 놀던 달빛 그늘 바스락대며 새벽 물들어 낙엽은 구르라지 아린 속 새살 돋으면 햇살 웃어 한아름 안길 테니, 열없이 연록이 기쁜 날엔hansangyou in blurt • 10 days ago사과를 먹으며---함 민 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맛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hansangyou in blurt • 11 days ago배경이 되는 기쁨---안 도 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떼처럼hansangyou in blurt • 12 days ago지우개---송 순 태--- 잘못 써내려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hansangyou in blurt • 13 days ago저녁에---김 광 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hansangyou in blurt • 14 days ago좋은 이름---엄 기 원--- '아버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하늘이다. 우리는 날개를 펴고 마음대로 날 수 있는 새들이다. '어머니'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겐 보금자리다. 우리는 날개를 접고 포근히 잠들 수 있는 새들이다.hansangyou in blurt • 15 days ago사랑일기---김 진 학--- 가난하지 않은 사랑은 없다고 해도 슬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고 해도 죽음처럼 쓸쓸한 고독을 밟고 파도로 일어나는 그리운 이여 만남보다 아름다워야 할 이별이 하나도 아름답지 못한 기억으로 억장으로 부셔진 내 앞에 서던 날 잠자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던 날 눈감으면 몰라서 편안하던 날 하늘은 물빛으로 깊어져…hansangyou in blurt • 16 days ago갈잎은---한 상 유--- 떨어지며 제 몸에 부딪고 오르는 바람에 부딪고 울리는 햇발에 부딪고 저들끼리 부딪고 무정하게 돌아선 뒷모습에 부딪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에 부딪고 푸르무레한 빛 언뜻 주저앉아버린 높이에 부딪고 또 부질없이 흐려지는 눈길에 부딪고 하냥 은행나무 잎 밤나무에 부딪고 오디나무 잎 찔레꽃 아문 자리에 부딪고…hansangyou in blurt • 17 days ago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정 현 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hansangyou in blurt • 18 days ago등대---정 태 욱--- 터널 밖 빛속으로 뻗어나간 듯해요 거기 등대. 철길처럼 먼 방파제 끝 말없이 서 있던, 어쩜 그렇게 당신 닮았던지요. 바다를 향해 시의 마지막 단어처럼 그 발치에 서 있었어요. 오래 오래 울었답니다. 파도의 보채는 소리를 덧붙이지 못한 말로 남기고 되돌아오다 또 한번 돌아봅니다. 큰 키의 당신도…hansangyou in blurt • 19 days ago가을의 시---강 은 교--- 나뭇가지 사이로 잎들이 떠나 가네 그림자 하나 눕네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 정거장에는 꽃 그림자 하나 네가 나를 지우는 소리 내가 나를 지우는 소리 구름이 따라 나서네 구름의 팔에 안겨 웃는 소리 하나 소리 둘 소리 셋 무한 길은 멀어 그대에게 가는 길은 너무 멀어hansangyou in blurt • 20 days ago시월---이 문 재---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 은행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은행잎을 떨어뜨린다 중력이 툭, 툭, 은행잎들을 따간다 노오랗게 물든 채 멈춘 바람이 가볍고 느린 추락에게 길을 내준다 아직도 푸른 것들은 그 속이 시린 시월 내 몸 안에서 무성했던 상처도 저렇게 노랗게 말랐으리, 뿌리의 반대켠으로 타올라, 타오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