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Hide Reblurtshansangyou in blurt • 9 hours ago복수---이 연 숙--- 겨울 폭포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 한 뼘씩 한 뼘씩 자기를 드러내면서 올라간다 녹지 않고 얼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복수를 하는 것인지 흐르지 않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폭포의 여인은 제 무서운 복수를 위로 위로 세우면서hansangyou in blurt • yesterday풍경소리---이 봉 주--- 울음 속에 쇳물처럼 솟구치는 날개가 있다 천 번의 담금질에 쇳덩이 속에서 날개 돋는다 팔만사천 번의 매질, 울음의 두께로 날개를 편다 오래도록, 응어리진 울음을 풀어주고 흩어진 울음을 모아주던 손은 천개의, 귀 없는 바람이다 법당 문 꽃살무늬 고요 속으로 속세 지상의 상처들이 돌아와 엎드리는 밤 산사…hansangyou in blurt • 2 days ago그럼---이 병 률--- 당신이 물었습니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면 뭔가 필요한 것이 없겠냐구요 네팔에서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럼, 이파리를 모아주세요 하루에 한 장씩 아니면 며칠에 한 장씩도 좋습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돌아올 때 그걸 가져다 문에 바르거나 창가에 놓아두게요 내가 도착하게 되면 그…hansangyou in blurt • 3 days ago청춘가---한 상 유--- 아주... 즈지막이 말이야 자판기가 내린 커피는 영락없이 설탕 둘 프림 둘에 내가 떠나고 남은 풍경은 외로운가, 하는 미지근한 질문이 엉긴 한 모금. 삼키며 햇살 자투리에 쪼그려 앉아 다시 올는지 모를 계절을 마저 탕진하며 길품 판 김에 흥얼거림hansangyou in blurt • 4 days ago생일---이 강 건--- 내 생일엔 기쁨보다 헤아릴 수 없는 새까만 고통을 잊으신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내가 먹은 미역국엔 소고기도 들어 있지만 그날 우리 엄마 첫국밥은 멀건 미역국이었다던데 생일이라고 챙겨 준 선물 그것 받고 잠시 기뻐했지만 우리 엄마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hansangyou in blurt • 5 days ago마디---정 진 윤--- 대나무에게는 마디가 있어 굽히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엄마에게도 마디가 있었다 부러지지 않고 굽히며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조금씩 자라는 마디 그 마디가 있어 딸로 태어나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어 일주문을 세울 수 있었다 엄마는 우주를 세우는 우주였다hansangyou in blurt • 6 days ago감촉여행---함 민 복--- 도시는 딱딱하다 점점 더 딱딱해진다 뜨거워진다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닥도 척척 접히는 계단 에스컬레이터도 아파트…hansangyou in blurt • 7 days ago푸르른 날---서 정 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리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hansangyou in blurt • 8 days ago추억에서---박 재 삼--- 진주 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 엄매야 울 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hansangyou in blurt • 9 days ago서시---이 성 복---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hansangyou in blurt • 10 days ago울려고 내가 왔던가---한 상 유--- 우뚝 선 등대조차 휘몰리는 큰바람에 벋대려다 갈매기 몇 힘겨워 앉은 거기, 방파제를 넘다 젖어 고이는 어둠 속에 여태 섰다가 너울 젖어 돌아서는 산마루 눈썹달 하나 걸리고 어슴푸레 물위에도 일렁이는군 쓸려 아린 죄 된 사랑 가슴츠레 파도소리 밟으며hansangyou in blurt • 11 days ago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정 희 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의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 볼 때 어느 겨울인들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hansangyou in blurt • 12 days ago감---허 영 자---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hansangyou in blurt • 13 days ago저녁 식사---정 해 옥--- 교도소로 가야 합니다 남자에게 통역하고 법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 백화점에 들러 가다랑어 다타키를 사서 전철에 뛰어올라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오늘 맡은 사람은 생각보다 담담했나 (...)집에 들어와 바로 쌀을 씻는다 반성하고 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남자의 말들이 질끔질끔 쌀뜨물을 타고 흘러…hansangyou in blurt • 14 days ago시인의 집---이 휘 련--- 소나무 멀뚝하게 서서 피안의 마을 바라보고 있는 바닷가 가난했던 시인의 집에 바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그림자는 아직 남겨두고 몸만 빠져 나간 주인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갇혔던 시간이 밀려 나온다 세 칸 슬레이트 지붕 삭아 내리는데 자꾸만 구겨지는 그리움을 그림자는 펴고 또 펴고 휘어져 주저앉으려…hansangyou in blurt • 15 days ago목포---문 병 란--- 더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 항상 술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 잘못 살아온 반생이 생각나고 헤어진 사람이 생각나고 배신과 실패가 갑자기 나를 울고 싶게 만드는 곳 문득 휘파람을 불고 싶은 곳이다 없어진 삼학도에 가서 동강난 생낙지 발가락 씹으며 싸구려 여자를…hansangyou in blurt • 16 days ago겨울 길을 간다---이 해 인--- 겨울 길을 간다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없는 겨울 숲을 혼자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hansangyou in blurt • 17 days ago갈잎---한 상 유--- 거반 빈 가지 사이로 볕 바랜 온기 비집고 드는 돌아보면 선한 꽃다운 날, 의 뒤안길을 낸들 가긴 가네만, 가도 가도 남은 이승의 타래처럼 엉클어진 가랑잎 살그랑... 살그랑 훑어, 앞서는 소슬바람 무정한, 옹크려 나지막한 오후였지.hansangyou in blurt • 18 days ago겨울의 노래---복 효 근--- 멀리서 보면 꽃이지만 포근한 꽃송이지만 손이 닿으면 차가운 눈물이다 더러는 멀리서 지켜만 볼 꽃도 있어 금단의 향기로 피어나는 그대, 삼인칭의 눈꽃, 그대hansangyou in blurt • 19 days ago저녁 눈---박 용 래---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