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걸었다
처음엔 내가 빗소리가 발을 맞추어 걸었는데
나중엔 빗소리가 내 발에 맞추어 내리는 것 같다
아직은 초록으로 무성한 길을 걸으며
나무들에게 계절은 어떤 의미일까 나무가 되어 생각해 본다
너나없이 꽃을 피우는 때
열매 맺기 좋은 때라고만 했을까
겨울이 오기 전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을 털어내면서
민며느리 보내는 어린 딸 고운 옷이라도 한 벌 입히고 싶어
해를 등지고 앉아 피가 나도록 박박 문질러 초록을 지웠다
여물을 먹고 엎드려 느릿느릿 되새김질 하는 소의 등처럼
구부러진 산허리를 딛고 오는 여명(黎明)의 옷섶을 열고 가로챈 붉은 빛과
여지껏 달과 눈을 맞추지 못한 달맞이꽃의 심장을 팔아
노랑 저고리 다홍 치마를 지으며 몇 밤을 보냈을지
어린 새들이 보채는 소리에 쏟아지는 잠을 쫓으면
가을은 빗소리에 끌려 산굽이를 돌아가고
혼자서는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담쟁이가 가장 가는 빗줄기로
가을의 유언을 받아 적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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