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in blurt •  15 days ago 

아무것도 없어서 편하다고
무엇이든 마음껏 그려보라는 말은
유통기한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수양버들이
가르마를 타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봄바람 앞에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추가할 내용이 없는 통장이 목에 걸려
끼륵거리며 뱉어내는 ATM 앞에서
행복을 추월하는 검은 그림자가
꼬리를 수평으로 들고 지나간다

옴폭 패인 발자국에서
벼룩이풀이 고개를 가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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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김경인

처음 산 거울 속
숨겨둔 줄 모르고

우리는
얼굴을 비워두고

밤새도록 꼬챙이처럼
잠을 들쑤시고

서로의 여백이 찢어질 때까지
긴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멀리서
나뭇가지처럼
돋아나는 것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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