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잡지 못해 떠돌던 눈이
봄하늘에 나부낀다
아직은 아니라고 몇 번을 타일러도
성급하게 단추를 푼 개동백이
푸르스레 멍이든 얼굴이다
만날 때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던 얼굴
내 눈에 끝없는 허공으로 펼쳐지고
머물 수 없던 마음은
철 지난 봄눈이 되어 떠돌고 있다
봄눈 / 정호승
나는 그대 등 뒤로 내리는
봄눈을 바라보지 못했네
끝없이 용서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그대 텅빈 가슴의 말을 듣지 못했네
새벽은 멀고
아직도 바람에 별들은 쓸리고
내 가슴 사이로 삭풍은 끝이 없는데
나는 그대 운명으로 난 길 앞에 흩날리는
거친 눈발을 바라보지 못했네
용서 받기에는 이제 너무나 많은 날들이 지나
다시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사막처럼 엎드린 그대의 인생 앞에
붉은 무덤 하나
흐린 하늘을 적시며 가네
검정고무신 신고
봄눈 내리는 눈길 위로
그대 빈 가슴 밟으며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