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데군데 눈 녹은 자리
입술이 파랗도록 빗물을 빨아먹는
애기똥풀과 개망초의
이즈러진 얼굴이 보인다
어쩌다
보드라운 손길로 쓰다듬어주다
노을이 되어 사라지는
겨울해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별보다 두려운 밤이 오는 소리에
귀를 막고 울기도 했다
해마다 오는 겨울
뿌리만 굳게 지키면 다시 살아나
꽃이 되기 위해
맨발을 꼼지락거리며 봄을 부르고 있다
겨울나기/도종환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 마루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 처럼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러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 해도
모들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들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Life from the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