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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lurt •  2 months ago 

몇 해째 갱년기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친구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것도
다 갱년기 때문이라고

그건 아니다
꽃을 보아도 벌써
예쁜 아기를 보아도 벌써
누구네 집 아들이 군대를 가도
벌써가 인사다

벌써라는 말이 노화를 업고 달린다
벌써라는 말 속에
생각도 행동도 굼뜨다는 뜻이
봉숭아씨처럼 들어있다

늙었다를 두 자로 줄이면
벌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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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 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멀어져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내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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