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시

in blurt •  5 days ago 

벌레먹은 잎이 매달려 있다
먼 길을 같이 가 줄 바람을 만나지 못해
거미가 살다간 빈집 처마밑에서 그네를 타고

벌레가 파먹고 간 구멍으로
벌레먹은 하늘이 드나들고 있다

배춧잎 같은 하늘을 갉아먹은 구름이
배추밑둥처럼 살이오른다
좋은 글 읽고 좋은 얘기만 들은 내 귀도
군살이 붙었다

이제는 그만 털어내라고
목화송이에 앉은 가을 해가
몇 번이고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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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함된 가을 / 조정권

먼 곳에서 하늘이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어느 두 손으로 묵묵히 용납합니다

가을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짝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과나무가 되어
밤늦도록 책상 앞에 사과나무 잎사귀를 펼쳐 놓고
시를 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사과나무가 되어
무수히 열린 사과열매를 등불로 삼아
시를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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