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
빨래건조대가 허술하게 서서 비를 맞는다
스테인레스 재질의 빨래건조대에
빗물이 매달려있다
지나가던 중학생이 턱걸이를 하듯 매달려있다고 한다
모자 밑으로 빠져나온 희끗한 머리를 넘기며
빗물이 붙어있다고 한다
다니러 온 것처럼 와서 눌러앉은 객식구처럼
만원의 행복을 찾아 틈만 나면 콜라텍으로 가는
깡마른 얼굴에 헌팅캡을 쓴 영감님이
운명처럼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빗물 한 방울의 그림이 참 다양하다.
초저녁 달 / 박형준
내게도 매달릴 수 있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이슬로
저녁에는 어디 갔다 돌아오는 바람처럼
그러나 때로는
나무가 있어서 빛나고 싶다
석양 속을 날아온 고추잠자리 한 쌍이
허공에서 교미를 하다가 나무에 내려앉듯이
불 속에 서 있는 듯하면서도 타지 않는
화로가의 농담(濃淡)으로 식어간다
내게도 그런 뜨겁지만
한적한 저녁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