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해를 에워싸고 있다
타오르는 태양도 구름 뒤에서 서서히 식어갈 것이다
바람이 몰려왔다
서로 스크럼을 짜고 오는 바람은
오백년도 넘은 밤나무를 쓰러트리고
갈대의 무리가 허리를 굽히고 땅에 이마를 찧을 때까지 몰아쳤다
그래도 바람처럼은 아니어서
그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서
고맙다고 해야 할까
소꿉친구가 갈림길에서 잘가라고 하듯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돌아섰다
내 손은 그의 옷자락이 남기고 간
허공을 잡고 있었다
해변의 절벽/ 이병률
해안 절벽 찰랑이는 물결에 목을 걸고 바위가 떠 있다
바위 표면은 살려고 납작 붙어 있는 따개비 같은 것들로 희끗하다
내 눈에다 깊이 그것을 담으려 하지만
자주 물처럼 흔들려 어렵다
그것을 내려보다가 난 그만 울컥하였다
왜 슬프냐고 당신이 물었다
왜 슬프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다
만 년 전에 해안이 밀려와 여기 도착하였고
천 년 전에 높은 산으로부터
이 바위가 조금씩 굴러와 여기 잠겨 있을 텐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느냐고 말하려다
당신에게 자갈 하나 주워 건네는 것으로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