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엄마는 첫째다.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가 있어 아버지는 14살 때부터 장난감 공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엄마는 13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가족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했고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가정통신문에 부모님 출신 학교를 적을 때마다 부모님은 부끄러워 하셨던 거 같다. 부모님께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나 역시 기회가 적었다. 부모님께 교육을 받는 건 기대하기 힘들었고 학원을 다니기도 어려운 환경이었다. 더구나 나부터 공부를 하기 싫어했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 놀았고, 축구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 부모님께서 학교를 잘 다니셨다면, 그래서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곧 공부를 하지 않은 건 나고 모든 책임 역시 내가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싶다. 조금 더 많은 곳을 둘러보고 다양하게 체험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나 흥미를 가지는 것이 생겼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적어도 나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 할 수 있는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가장 많이 배운다는 게 정설이기에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규칙적인 생활과 올바른 언행, 타인을 배려하고 연민을 가지는 마음, 헌혈이나 기부를 통한 나눔, 꾸준한 독서과 공부... 사실 가끔은 새벽에 일어나는 게 힘들고 무언가 꾸준히 하는 게 실증 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해나갈 때가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아빠의 좋은 모습만 보아주고 사랑으로 다가온다. 정말 감사하게도 아이들 모두 밝고 건강하게 자란다. 첫째는 첫째 나름대로, 둘째는 둘째 나름대로, 그리고 셋째는 셋째 나름대로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감사하다. 아직까지 생각처럼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각자 좋아하는 일과 꿈을 가지고 있어서 또 고맙다. 어린 나이기 때문에 꿈이 자주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면 한다.
어느 대학생이 쓴 글이 생각난다.
아주 가난한 집안이지만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했다. 학비 내는 것도 빠듯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생이 되었다. 개인의 성공보다는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다. 여느 날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 아버지께 전화가 오다 끊겼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아버지께 전화를 했는데 아버지께선 "공부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하다.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다. 목소리 들었으니 되었다."고 하시며 전화를 끊었다. 넉넉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평생을 죄인처럼 사셨다. 아들에게 전화하는 것조차 미안해 하셨다. 학생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만큼은 죄인이 되지 않으시기를.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흙수저라는 의미를 모르셨으면 했다. 부모님은 자신에게 아주 좋은 흙이다. 나무의 뿌리가 단단하게 박히고 좋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최상의 흙. 찌는 듯한 더위나 강추위를 이겨내고 태풍마저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 했다. 이미 좋은 것을 물려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했다. 이제는 자신의 노력으로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분의 글을 보면서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자랄 수 있도록 내가 좋은 흙이 되어야겠다는 다짐했다. 가능하면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게 지원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나기 전까지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언제나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