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아기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이건 뭐야? 뭐지? 뭘까?"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알려주면 그대로 습득해서 두세번 다시 알려주는 경우가 드물었다. 영특한 면이 있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다양한 분야에 재능을 드러낸다. 아내님을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린다. 나를 닮아서 운동을 잘하고 유치한 농담 역시 잘한다. ㅎㅎㅎ 어쨌든 좋은 점을 잘 물려 받은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첫째의 단점 하나는 스스로 동기부여 하지 않는 점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을 읽는 순간의 즐거움에 만족할 뿐 책에서 배운 내용을 깊이 이해하거나 삶에 적용시키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한정된 지식으로 남아있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지식을 활용해서 지혜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머리로는 이해한 것처럼 보여도 행동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아직 어리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아내님은 이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을까봐 지금부터 바로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내님 말도 일리가 있다. 예를 들어 100을 할 수 있는 아이인데 스스로의 한계를 50으로 잡고 그것에 만족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이 생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첫째의 장래에 대해 크게 걱정하거나 원하는 건 없다. 자기 스스로 만족한다면 '똑똑한 노숙자'가 되는 삶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님은 첫째의 잠재력이 더 큰데 안분지족 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동기부여 해서 성장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원하는 삶이면 어떤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이가 조금 더 삶에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이끌어주는 것에는 크게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전자는 방관에 가깝고 후자는 관심에 가까웠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내님과 대화하다 내린 결론은 이거다. 아이가 스스로 동기부여 할 수 있게 이끌기 위해서는, 아이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는 결국 부모가 모범이 되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삶을 의미 없이 허투루 보내는 모습을 아이들이 본다면 그대로 모방하기 십상이다. 반면 우리가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보고 배울 것이다.
얼마 전 아내님과 함께 첫째와 둘째가 민화에 도전했다. 언제나 첫째에게 가려져 있던 둘째는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기존 밑바탕에 없는 과일을 그려 넣었고, 그 과일을 먹은 호랑이의 입술을 빨갛게 칠해주기도 했다. 칭찬에 인색한 첫째마저 자신의 그림보다 둘째 그림이 낫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둘째 그림을 보면서, 아내님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알게 모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 역시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꾸준히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를 가장 성장시키는 동기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