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집에서 죽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님은 네 차례에 걸쳐 암투병을 거치셨다. 불가피하게 모시게 된 요양원, 하지만 어머니는 매번 집에 가고 싶다 하셨다.
그토록 그리던 집,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햇반을 데워 김에 싸서 밥 한 술을 뜨시고 당신이 좋아하던 이부자리가 있는 침대에 들었다. 그리고 TV를 키고. “내 집이 너무 좋더라.”허셨다.
답답해서 거실로 나가도, ‘어르신, 들어가세요’, 도무지 내 맘대로 할 수 없던 환경이 너무도 싫으셨단다. 독립적인 나만의 공간에 대한 절실함이 크셨던 어머니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집을 택했다.
돌봄의 주체는 ‘노인’이다. 그러나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으로 가는 건 가족이나, 의료진의 결정이다. 그리고 그곳의 일상은 '의료적 편의나 서비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70대 노인이 옷을 사고 있을 때, 그 비싸고 예쁜 옷을 뭐하러 살까 했다. 자신이 70이 되어보니 그녀 역시 옷이 사고 싶었다. 철침대가 노인에게 허용된 유일한 공간, 휴일의 늦잠, 산책, 먹고 싶을 때 시켜먹을 수 있는 치킨, 이런 것들이 허용되지 않는 삶이 과연 맞는 건가?
‘노년의 목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임종을 사흘 앞둔 노인, 곁에서 간호를 하는 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여 환자의 입에 물린다. 일본 지바현 긴모쿠세이 요양원에서는 숨이 멎기 직전까지 노인의 소망을 받아들인다. 집에서는 혼자 생활 할 수 없는 노인들, 본인이 삶의 중심이 되도록 돕는 곳이다.
치매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집에 간다’고 나서는 노인, 요양원 사람들은 ‘조심히 가세요’라고 인사한 다음 몰래 따라나선다. 대부분 노인들은 5분도 안 돼 길을 잃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다. 그때 다가가 ‘차 한잔 하실래요?’라며 노인을 모시고 온다.
노인의 신체를 억제하지 않는다. 원할 때 침대에 눕고,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요양원을 만들고자 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걸 함께 해주는 노년의 삶을 유지해나간다. 노년은 시설이냐 집이냐 하는 ‘장소’의 문제로 치환되어버린다. 노령화사회가 된 대한민국, 치료 중심의 돌봄을 넘어서, 나의 목소리와 내 삶의 서사가 존중받을 수 있는 노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본문 이미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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