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신금지

부재중 전화에 낯선 번호가 찍혀있다.
세상이 어수선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모른척 할까 하다
하도 여러번 찍혀 있기에 무슨 일인지 몰라 콜백을 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바로 받는다.
고등학교 동창 아무개라고 하는데 이름도 기억이 없고
얼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선뜻 아는 체를 하지 않자 계속해 자기와 일을 얘기한다.
조그만 시골학교라 나하고 친하게 지낸 적은 없어도 이름을
대거나 친구를 대면 대부분 생각이 나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기억에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동창이 아니거나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

후자였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중 부모님이 안 계서서
조부모님과 어렵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집도 멀어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는데 어떤 때는 차비가 없기도 했고 용돈이 없어
친구들과 간식 사먹을 때도 슬며시 빠지곤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괴롭혔고 그 결과 우리 친구 중 힘 센 친구가 제대로
손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동안은 잠잠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또 그러기에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내 친구뿐 아니라 다른 애들에게도 좋지
않은 행동을 해서 이미 징계수순을 밟고 있던 차였다. 부모님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지역에서 학교 운영위원을 움직여 퇴학은
면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오랜만인데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한다. 피곤하기하도 술
생각도 없는데다 그러고 싶지도 않아 차나 한 잔 하기로 했다.
그애를 잘 아는 친구를 불렀다. 나 혼자가 아닌 걸 아는 순간 당황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다짜고짜로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큰 돈도 아니고 잠깐 꾸어주면
금방 갚는다고 쉽게 말을 한다.

오늘 만남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하고 먼저 일어나 커피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같이 간 친구가 한 마디 한다. 나 혼자 나갔으면
돈 안 뜯기고는 못 일어났다고 하며 친척이고 동네 선후배들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며 전화번호 착신 금지하라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 착신금지라는 걸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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