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가 익는 계절/cjsdns
뽕잎이 제법 커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오디가 익어간다.
오디가 익을 때면 누에보다 더 뽕나무에 매달려 지내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귀한 과실이 되어 제법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지만 예전에는 오디는 그냥 동네 아이들 주전부리였다.
뽕나무의 주된 식재 목적은 뽕을 따서 누에를 키우는 게 목적이었지 오디는 수입이라는 것과는 아주 먼 그냥 뽕나무에 붙어있는 열매정도이지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세상이 바뀌니 상전벽해가 아니라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지금은 뽕보다는 오디를 생산할 목적으로 뽕나무를 많이 심는다.
그러나 예전에는 누에를 치는 것을 잠업이라 했고 시골 농가에서는 봄가을로 치는 누에가 제법 큰 수입원이 되었다.
누에를 기르는 일이 왜 누에를 친다고 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뽕능 따다 먹이며 때를 맞추어 잠을 재워야 했고 넉 잠을 재우고 나면 누에게 누르스름 말갛게 되는데 그때 섶에다 올려 주면 각자 하얀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지금은 누에를 쳐도 누에고치가 목적이 아니라 누에 자체를 쪄서 말려 분말로 만든 것이 당뇨에 좋다나 하여 매우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한다.
그렇지만 뽕나무를 키우는 주된 목적이 이십여 년 전부터는 오디를 생산하기 위한 게 되었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걷다 보니 까맣게 익은 오디가 보인다.
몇 개 따서 먹어 보니 기대했던 맛은 아니나 향수 혹은 추억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오디를 많이 따 먹은 게 지그까지 누리는 건강의 보탬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디를 참 많이 따 먹었다.
뭐 믿지 않을지 몰라도 허기를 달래는데 오디보다 좋은 게 있을까 싶다.
지금은 안되지만 내가 어렸을 당시는 오디를 아무리 따 먹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뽕만 망가트리지 않으면 오디를 얼마를 따 먹던지 상관하지 않았다.
입은 물로 손까지 오디 물이 들면 질 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윤이 나도록 까맣게 잘 익은 오디의 달콤한 유혹은 이 세상 무엇 보다도 맛난 먹거리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은 거라니...
지금은 남의 뽕나무 밭에 가서 오디를 따 먹다가는 경찰서 신세를 져야 하는 세상이다. 그렇게 오디가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좋다고 하니 더욱 소문이 돌고 인기가 있어서 상품이 되었고 제철이 되면 마트에도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 어렵지 않게 사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 옛날 등하교 길에 책보를 어깨에 둘러메고 따먹던 오디처럼 맛있는 오디는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의 삶은 그 자체로 축복받은 동화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면 그때의 그 모습들이 참 아름 다운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화 같은 유년기, 혹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난 복이 참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그래 그런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거 같다.
감사합니다.
2024/05/22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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