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협력을 위해 ‘햇볕 정책’을 주장하는 순간, 이 정책은 실패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하든 상대방을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두터운 외투를 벗기겠다는 설명은 순전히 국내용이었다. 그런 말을 듣는 북한의 김정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경계를 했을 것이고, 체제를 위협하는 일정 정도 이상의 남북교류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것을 몰랐을까? 그럼에도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국내의 정치적 환경 때문이었다. 북한과 교류를 한다고 하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반발이 워낙 심해서 사람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야 했고, 북한은 그 설명을 선전포고와 마찬가지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후 개성공단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은 북한의 싼 인건비로 이익을 보았다. 북한의 노동력은 매우 질이 높았고 생산성도 높았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한계가 분명했다. 남한의 기업들을 북한의 싼 인건비를 이용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북한의 산업발전에는 별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개성공단으로 북한은 수입을 거두었지만 산업발전을 위한 기술의 습득과 같은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개성공단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남한의 기업들이 북한의 값싼 인건비를 이용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속적이지 못하다. 남북간 교류와 협력은 상호호혜와 상호 이익에 바탕해야 한다. 남한이 북한을 경제식민지처럼 부려먹는 방식의 협력은 오래가지 못하며 지속적일 수 없다. 남한 기업들이 생각하는 남북협력은 북한을 원료공급이자 시장이며 인력공급처로 보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북한과 공존은 불가능하다. 핵을 가진 북한을 경제력으로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북한 핵은 기정사실화되어 인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아프간사태 때문에 파키스탄의 핵을 인정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시간이 가고 상황이 바뀌면 모든 것은 변한다. 미국의 비핵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항상 바꾸어 왔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도 그렇게 가능할 수 있었다. 북한이 그런 것을 모를리 없다. 미국이 갑자기 원칙을 바꾸어 북한핵을 인정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국이 북한핵을 인정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발가벗은 어린아이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인문지리적 억제를 구상해야 하는 것이다.
개파공단을 통해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국을 포함하여 참가한 모두에게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어야 하며, 어느 일방이 포기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억제가 가능하며 지속성이 있다. 남한이 수준높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고 낮은 인건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보면, 북한은 차후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위한 경험과 기술의 축적이 가능해야 한다.
북한이 자체적인 산업 발전을 위한 충분한 이익과 이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억제의 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 남북한 그리고 미국 등 당사자 누구도 개파공단을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된다. 미국이 개파공단에 참가한다면 미국 또한 상당한 이익을 향유해야 한다. 적어도 한국에 무기를 팔아서 벌어가는 이익에 버금가는 수익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개파공단은 세계적인 수준의 첨단과학기술 분야의 생산단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