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절대다수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고전을 겪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 심지어 상당한 군복무 경험을 지닌 사람들도 그렇게 평가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가 대부분 그렇다. 잘못된 평가는 언론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런 평가를 철석같이 믿는다. 전쟁을 연구해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미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프간에서 미국과 소련이 패배한 경험이 있어서 절대적인 평가기준은 아니지만, 전쟁은 국력의 싸움이다.
격투기 처럼 계속 두들겨 맞다가 럭키 펀치로 상대를 눞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전쟁상황을 들여다 보면서 미국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국의 고위급 예비역 장성이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10일만 견디면 러시아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보면 CNN에 나와 전쟁상황을 설명하던 거의 모든 미국 예비역 장성들이 러시아가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런 평가를 평생 군생활을 한 세계 최고의 직업군인들이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쟁상황 평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러시아가 수행하고 있는 전쟁을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일부러 왜곡시키고 있거나 아니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만든다. 실제로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가 수행하고 있는 전쟁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할까?
미국과 서방의 군사전문가들이 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미측이 제시하는 상황도와 러시아가 제시하는 상황도의 차이를 보면서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전황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실제 미국의 예비역 장군들의 상당수는 러시아가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만일 미국의 예비역 장군들이 미국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러시아가 고전한다는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기 위해 미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 전황을 왜곡했다면 이번 추정은 전혀 사실과 다를 수도 있겠다.
미국과 러시아 군의 차이는 전투행위의 목표를 보는 시각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즉 군사적으로 말하자면 중심(Center of Gravity)의 차이다. 작전은 적의 중심을 지향한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가 군사력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중 핵심은 아조프 부대이다. 군생활를 해본 사람이라면 적전술 시간에 북한군이 유생역량 말살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북한군의 전술이란 소련의 전술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유생역량말살이란 병력을 완전하게 제거해야 전쟁에 이긴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지금 주요 전투를 주로 남부지방의 돈바스 공화국 전면에서 치르면서 측후방으로 아조프 부대를 타격하고 있다. 주요 도시는 봉쇄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고 완전하게 포위된 마이우폴 같은 지역은 소탕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즉 러시아의 일차적 작전목표는 돈바스 지방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주력군부대인 아조프 부대를 소탕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는 돈바스 정면의 아조프 부대에 관련된 상황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주요 전투가 거의 돈바스 정면이 아조프 부대를 지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심을 수도인 키에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수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예비역 장성들은 수도인 키에프의 전황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러시아군이 키에프를 신속하게 점령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러시아가 제대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측에서 제공하고 있는 전쟁상황도에서도 키에프 주변의 상황을 중요하게 표시하고 있다. ISW라는 이름의 싱크탱크에서 제공하는 브리핑은 주요 도시의 전황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주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아조프 부대지역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길어도 1주일 정도면 돈바스 지역 앞에 배치된 아조프 부대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도 계속 후퇴중이다. 만일 아조프 부대가 궤멸되면 러시아군의 진출을 막을 우크라이나 군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수도로 직접 공격한다. 러시아는 도시는 봉쇄하고 우선 유생역량인 아조프 부대를 격멸하는데 주력한다. 이런 전쟁 수행방식의 차이가 전황을 잘못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십년전에 전쟁을 겪었지만 전쟁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너무 미흡하다. 러시아는 군사학을 학문의 영역까지 올려놓았다. 우리도 그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쟁과 군사문제를 군인에게만 맡겨 놓으면 안된다.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다. 기업인들도 전쟁과 군사에 대해 통달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상황을 두고 우리나라 언론과 일부 인사들이 러시아가 패배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마치 대승을 거두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잘못된 정보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다.
신인균 국방TV 같은 유튜브 들도 우크라이나 중심으로 전황을 설명하던데 언론이 무섭네요.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시아는 평화 유지 작전이라고 함.)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바라보는 중심(Center of Gravity)이 서로 다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