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중심의 세계 뿐만 아니라 서구 중심 역사의 종말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은 서구역사를 의미하기 때문에, 미국의 패권 종식은 자연스럽게 서구중심의 역사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미국이 억누르고 있던 국제정치의 각 세력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고개를 들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이다. 미국은 나토를 중심으로 패권을 강화하려고하고 있으나 그 반대편에는 브릭스가 대항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서구 중심의 역사는 15세기 유럽의 팽창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중국과 인도 그리고 투르크가 역사의 중심이었다. 15세기 당시 유럽이 대항해의 시대로 접어들 때만 해도 유럽은 문화적으로 후진적이었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항로를 개척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던 중국과 인도는 차례차례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인 인도, 중국, 중동, 이집트가 모두 유럽의 지배를 받았다. 18세기부터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중국과 인도는 모두 한때 자신들이 후진국이라 생각했던 유럽의 지배를 받게된 것이다.
유럽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나 그중에서도 자본주의체제의 발전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인도 및 여타 국가들로 부터 원료를 가져다가 상품을 만들어 이들 국가에 판매하는 제국주의적 순환경제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명목상으로 제국주의적 식민지배체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명시적인 형태는 사라졌으나 자본주의 체제가 생존해왔던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신자유주의는 그 내용을 보면 제국주의적 경제형태에 다름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원을 가장 많이 가진 러시아를 파괴하지 않으면 미국과 서구의 경제방식이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전 지구의 1/6을 차지한 러시아의 자원에 대한 통제없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원료없이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윤율 하락의 경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러시아는 미국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군사력도 강화했고, 자원과 국가경제에 대한 통제력도 강화했다. 이런 강력한 국가는 미국을 위시한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에게는 체제 존속을 방해하는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의도가 분쇄되는 순간, 18세기 이후 역사를 주도해왔던 미국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힘이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은 미국과 서유럽이 힘을 상실하고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브라질, 남아메리카와 같은 국가다. 이들 국가중 중국, 인도, 이란은 문명의 발상지라는 공통점을 그리고 러시아, 브라질과 남아메리카는 자원부국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미국과 유럽이 그동안 역사를 주도했던 방식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다시 과거의 강대국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은 인구가 많이 살수 있는 지역이다. 인구가 많고 물산이 많았기 때문에 문명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과 유럽의 역사적 주도권이 약해지면 당연히 인구가 많고 자원이 많은 국가들이 다음 세상의 주도권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미국중심의 단극체제에서 다극체제가 바뀌면 어떤 일이 생길까? 유럽은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유럽에서 국가란 부르주아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지들이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위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적 자유란 경제적 자유의 부수물인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유럽이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면 한국은 가장 많은 손해를 볼 것이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세상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거두었다. 앞으로 미국과 유럽이 주도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면 한국도 그대로 지금처럼 살아가면 된다. 문제는 앞으로 미국과 유럽은 과거와 같은 주도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극체제에서 한국은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국가형성과정에서 주권불가침이라는 가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역사적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에게 있어서 주권불가침과 같은 가치는 말장난에 불과하게 여겨질 것이다. 주권불가침이란 원칙은 유럽이 국민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피를 흘리며 수립한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강대국들은 그런 역사적 경험이 없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한반도를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로 보는 것도 그들의 역사관과 국가관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이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북한이 중국을 천년의 원수라고 한 것은 우리보다 역사적 경험에 대한 고민이 더 심각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꽤 오래전부터 북한이 중국을 의식해서 핵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힘이 약해지고 중국의 힘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
지금까지 써 오신 글에 그 방안의 대강이 있지 않을까요?